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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목사고을시장’이라는 이름은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나주목사가 행정을 보던 장소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곳은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라도 남부 지역의 행정과 문화의 중심지로서 기능해왔으며, 이는 곧 나주의 자긍심이자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시장이 형성된 지역이라는 역사성과,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져 온 삶의 문화가 어우러진 곳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나주읍내장인 ‘나주목사고을시장’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전기까지 이르게 됩니다. 1470년(성종 1년)의 『중종실록』에는 나주에서 ‘장문(場門)’이라는 이름으로 시포(市鋪)가 처음 열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볼 때, 나주와 무안 지역에서 공식적인 장시가 처음으로 설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우리나라 시장의 시초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1473년(성종 4년)의 『성종실록』에서도 나주와 무안 지역이 흉년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포를 열고, 이를 ‘장문’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확인됩니다. ‘장문’은 지금의 시장과 같은 개념으로, 당시 지역 주민들이 극심한 기근 속에서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시장을 열었던 사례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당시 사농공상의 질서 아래 상업 인구의 증대를 우려한 호조에서는 장시의 운영을 금지하려 했고, 이로 인해 지역 발전의 소중한 기회가 막힐 뻔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나주목사였던 이영견(李永肩)은 장시 금지령을 철폐해줄 것을 간청했다고 전해집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장시는 전라도 지역에서 시작되었으며, 그중에서도 나주, 무안, 함평 등은 서남해안에 인접하고 영산강을 중심으로 비옥한 평야가 펼쳐져 있어 물산이 풍부한 지역이었습니다. 이러한 풍부한 물산은 활발한 교역을 가능하게 했고, 시장의 조기 형성을 이끈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특히 나주와 무안은 영산강과 그 지류를 비롯한 수많은 하천으로 인해 형성된 비옥한 토지와 넓은 평야를 기반으로, 농수산물의 생산량이 매우 풍부하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영산강의 물길과 서해를 통한 수로 교역은 시장 형성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게 하였으며,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시장이 자연스럽게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